“구설수가 많은 작품을 본다는 것은”
얼마 전, 개봉한 한 영화가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SNS를 비롯한 온 언론을 들끓게 하고 있었다. 무슨 영화이기에 그렇게 이슈화가 되었나? 라고 하면 몇 년 전, 온 오프라인 서점을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문제작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논쟁이 되는 책이나 영화 등을 보고 읽는다는 것은 약간의 망설임을 수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이나 남녀평등 문제에 대해 평소 큰 관심을 두고 살아오지 않은 사람 중 하나이기에 더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사실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길이 그다지 가볍지는 않았다 그 이유에는 여러 기사를 통해 나왔던 공격적인 페미니즘 운동권을 상상하게 하는 논지의 글이 있으면 어쩌지 ? 하는 우려심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된 이후, 나는 그것이 나의 편견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안에는 그저 ‘김지영’ 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평범한 여자의 일생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김지영씨는 남자를 위해 여자가 희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치는 가정 문화 속에서 자랐고, 남동생에게 무엇이든 양보하여야 한다는 가풍 속에서, 학교에서도 늘 여자다워야 한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외모지상주의적인 편견 가득한 자신의 경험을 아주 자연스럽고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원작에서는 매우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김지영 씨의 인생이 흘러가는 순서에 따라 기술된다. 그녀의 일생은 그녀가 성인이 되고, 회사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결혼을 하고 이후에 아이를 낳고 살아갈 때까지도 변하지 않는 우리 주변의 남아선호사상과 여자에 대한 성적 편견, 비하, 남성 우월주의가 담긴 말들과 사회적 분위기를 하나씩 다 집어내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읽어 내려가면서 ‘정말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여성들을 대해왔는가?’ 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할 정도로 어떤 에피소드는 작았으며, 예리했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내 삶에서도 볼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김지영씨의 30대 유부녀이자 아기 엄마로서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리고 그 30대 김지영씨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부분, 부분씩 배치함으로서 어떤 특정 상황에서 연상 작용처럼 떠오르는 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이내 이 영화의 내용에 그토록 ‘내 이야기야.’라면서 공감하는 여성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소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겪고 있었고, 그 중 누군가는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누군가는 김지영씨처럼 마음에 쌓아 자신을 무너트리는 칼날처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그것을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2019년에 사는 나는 그렇게 배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82년에 태어난 지영씨의 삶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보며, 나는 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지영씨가 변해야 할 일로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본 후 결국 그것은 양쪽 모두가 변해야 하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줄 만큼, 그리고 그 상처가 한 사람이 아닌 많은 여성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을만한 것이라면 그것 자체로 분명 변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그렇다고 사회의 변화를 기다리고, 투쟁하는 것만이 옳을까? 어떤 변화이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타인의 몫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늘 시작해야 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의 말, 행동, 그리고 생각을 돌이켜보고, 내가 변화해야 할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공감”
그리고 이 영화의 영향력에 대해 아무래도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 이 책은 지금까지 세 번의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첫 이슈는 2016년, 서점에 이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온갖 페미니즘과 그 반대파 사람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때였다. 모이는 곳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마다 ‘너는 그 책에 나온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 책에 나오는 남성우월주의, 여성의 경력단절과 관계된 불이익 등의 남녀차별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어제 오늘 있었던 일도 아닌데, 유달리 이 소설이 나온 직후,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를 성(性)으로 나누고, 절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처럼 취급하며, 때로는 서로를 공격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곤 했었다. 아마 그 즈음부터 벌어졌던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일부에서 벌어졌던 몰카 사건 등이 힘을 가세해 일부 극단적인 패미니스트를 중심으로 이 소설이 패미니스트의 심리를 대변해줄 정석인 것 마냥 칭송되며 이슈는 더욱 거세졌다. 물론, 이 소설에 나오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이 아닌, 그저 82년 생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골라, 가장 일반적인 여성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선정된 것이었으나, 이 소설을 읽은 일부 여성들은 마치 자신의 이름이 김지영인 것 마냥 몰입하였고, 이 책은 패미니즘을 대표하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이슈는 작년이었다. 이 논란의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였다. 대표적인 호감 배우라 칭해지는 정유미, 공유가 주연을 맡게 된다는 소시게, 안티팬 없던 두 사람을 혐오하고 실망했다는 인터넷 댓글이 줄을 이었다. 아무리 논란이 된 소설이라고는 하나 이제껏 대중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이 작품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다지도 반발이 심한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세 번째, 그 논란의 원작, 그리고 영화화된 작품이 예상외의 좋은 흥행 가도를 시작했고, 그로 인해 인터넷과 온, 오프라인 여론은 또 다시 이 82년생 김지영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원작에서 논란이 되었던, 남성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 무능력한 모습으로 일관되게 비춰졌던 시선을 조금 거두고, 각색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김지영씨가 받았던 어린 시절부터의 남녀차별과 부당한 대우 부분은 조금 줄였다. 그리고 유독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경력단절 등의 상황에 놓인 30대의 김지영씨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듯하다. 그것이 배우의 의도였는지, 각색 작가나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 결혼하고 아이 낳더라도 잘 해나갈 수 있어요. 팀장님처럼요.”
어느 정도 남녀차별의 논란 속에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여 원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 같기는 하다. 더불어 경력단절과 육아 전쟁 속에서 삶에 힘들어하는 여성의 모습을 집중해 보여줌으로서 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호평과 공감을 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의 논쟁, 하지만 직접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단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에 대한 찬반이 아닌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나의 어머니 이야기, 나의 동생 혹은 아내,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담백한 이야기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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