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이든지 그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복궁 같은 고궁유적이나 오래된 한국식 한옥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고 할 것이며, 로마, 그리스는 콜로세움과 신전과 같이 거대하고 웅장한 석조건축이 있으며, 중국은 자금성과 만리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건축 전공자로서, 저자 김희곤씨는 스페인을 건축이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 있기에, 스페인 자체가 건축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나는 이 책의 제목에서 스페인의 건축에 대한 저자의 찬양과 숭배를 엿보고 매우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은 건축에 대한 전문서적이 아니다. 단지 마드리드 건축대학교 유학 경험을 가진 한 건축가가 느낀 스페인의 건축에 대한 여행기이다. 그는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라고 말하며 직선을 거부하고, 시대를 거슬러 다른 이상을 보여주는 듯 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건축물들과 도시를 소개함으로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나도 꼭 스페인에 직접 가서 이런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라는 마음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치안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쉽게 떠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스페인에 대한 이미지와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은 총 5장으로 되어 있다. 스페인광장과 마요르 광장의 마드리드, 그리고 아직은 낯선 도시 카스티야라만차, 알라브라 궁전이 있는 안달루시아, 그리고 대망의 가우디 건축의 성지 바르셀로나, 마지막으로 발렌시아, 살라망카, 빌바오이다. 그리고 모든 장의 제목에는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일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광장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물고 펼쳐져 있는 빛의 도시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라는 축구팀으로 더 친숙한 이 도시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은 돈키호테의 스페인광장이었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에는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그 주변에는 분수와 동상, 그리고 한가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진 속에 담겨져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열정의 투우나 플라멩고 춤이 아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더 생각났던 것은 스페인이 거쳐 온 아픈 침략과 전쟁의 역사가 그대로 해학으로 빚어져 녹아진 돈키호테 이야기가 스페인 자체가 가진 한없이 즐거우면서도 왠지 슬픔을 간직한 감성과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시대부터 수없이 많은 유럽 국가들의 침략 속에서 여러 문화가 뒤섞여 그것이 건축물에 그대로 녹아져 있는 것을 보며, 슬픔을 웃음과 춤으로 이겨낸 스페인 민족의 정신이 바로 저것이 아닐까 라는 추측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2장에서 신비의 고도 툴레로, 소코도베르 광장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작은 로마, 이슬람의 메카, 작은 예루살렘, 로마시대의 양식부터 이슬람, 유대문화, 유럽의 양식까지도 가미되어 있는 건축문화가 그대로 녹아져 있는 광장. 톨레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략적 군사요충지로 로마인에게 점령되었던 아주 먼 과거부터, 통일국가를 이룬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고, 이슬람, 카톨릭 등 각기 다른 종교적 싸움의 접전지가 되던 중세시대를 거치며 모든 역사를 묵묵히 가만히 견뎌왔다. 그래서인지 거리 곳곳에 가파르고, 좁고, 꼬이고, 비틀려 있고, 좁아지고 반복되는 기이한 건물의 모습은 모든 시간의 흔적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남는 단어를 두 가지로 꼽아보라고 한다면 수많은 아름다운 궁전들, 그리고 가우디일 것이다. 가우디는 내가 이 책을 읽기 이전부터 스페인을 여행하고 싶은 이유 중 가장 첫 번째 이유였고, 책의 저자 역시 가‘가우디 없는 바르셀로나는 상상할 수 없다.’ 라는 말을 쓸 정도로 그에 대한 찬양에 페이지를 아끼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건축에 흥미가 없는 일반 대중에게 가우디는 스페인에서만큼 유명한 존재는 아니다. 실제 가우디가 살아있었던 1880년대에조차 가우디는 대성당 건축을 책임질 만큼 실력 면에서 인정은 받았으나 매우 괴팍하고 고집 센 성격과 곤궁한 생활, 남루한 모습으로 인해 그가 옆에 지나가도 거지인 줄 알고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조차도 100년이 넘게 건축 중인 대성당 사진은 거의 본 적이 있을 만큼 가우디의 건축물은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로 남겨져 있다.
확실히 달랐다. 구엘 공원은 자연과 어우러져 전혀 인공적으로 만든 조형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희고 아름다웠고, 마치 팀 버튼의 유령신부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창문이 특이했던 밀라 주택과 바트요 주택은 한번쯤은 이런 건물에서 살아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독특함이었다. 그의 건축물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건축에 대한 선입견과 한계성을 완전히 깨부수는 것 같은 형태였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과학이기도 하다.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만, 그 안에는 사람이 돌아다니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안전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실용성 안에서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버팀으로서 자신의 안전함을 증명했고, 보이는 그대로 아름다움과 예술이 가지고 있어야 할 유일무이의 창조까지도 이룬 느낌이었다. 그런 그의 건축물 중 가장 오래 이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건축현장이 성가족 대성당이다.
“여타 유럽과는 완벽하게 구별되는 스페인만의 독창성은 혼종의 문화에 기인하고 있다. 이슬람의 향기가 지워지지 않는 남부 안달루시아 문화, 중세 유적이 화석처럼 박혀 있는 마드리드 카탈란 문화, 바로셀로나 민족주의의 산실 카탈루냐 문화, 독립투쟁의 화신 칸타브리아 바스코 문화와 대서양 연안의 갈리시아 문화가 모두 스페인 건축문화를 두툼하게 살찌웠다. 이런 문화적 다양성은 결국 바로셀로나의 현자이자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를 잉태했다”
건축가들에게 영원한 신이라 칭송되는 가우디, 대성당은 그가 남긴 과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책에는 여느 책이나 언론에 발표되던 대성당의 전경과 크게 다른 면을 촬영한 사진이 보이지는 않아서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웅장함, 그리고 144년이 넘게 아직도 지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 번 쯤은 보고 싶게 만드는 경이로움이었다. 이 성당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오래되어서 쓸모가 없다고 새로 재건축을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주 비싼 땅에 세워졌기 때문에 땅 주인이나 건물 주인이 옮기라고 말해서 이미 없어져버리고 현대적이고 모더니즘적인 건물로 다시 세워졌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건축물인데도 층마다, 바라보는 방향마다, 세워진 시대마다 빛깔과 건축 양식이 모두 다르다. 예전에 지어져 오래된 것은 이미 부식이 된 것 마냥 진한 색깔이 되었고, 새로 지어지는 부분은 새 것 그대로의 하얀 빛깔을 유지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것임에도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오히려 세월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스페인, 가우디, 대성당만의 멋인 것이다.
건축은 생활하기 위해 지어지는 구조물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대성당은 오랜 과거와 만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가우디의 다른 공원과 건축물은 건축도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 삶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오고 후대에 이어준 스페인 사람들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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