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게이고 (2016)
1970년대의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기계공학을 전공한 라플라스 라는 학자가 말하기를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있고 그것은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
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을 쉽게 풀이해보자면 이 지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인간의 삶 조차도, 물리학, 역학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와 순환 원리를 계산해낼 수 있다면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자연현상부터, 한 인간의 과거와 미래까지의 모든 일어날 일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나에게는 처음 듣는 순간 ‘무척 오만한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개인적으로 수학이라든지, 물리학에 특별한 반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다소 감성이 부족하기는 해도 과학자들의 그런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연구 덕에 우리가 지구 밖에 목성, 토성, 달의 공전 등까지도 알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기상과 기후를 예측해 올 한해의 농업, 어업 등의 식량생산량도 늘어나, 나의 삶도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수 있으니 나는 과학자들이 우리 인류의 삶에 굉장히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는 말에도 공감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이 라플라스의 이론은 다소 과학에 대한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이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라플라스라는 사람을 검색해봤을 때에는, 이것이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런 오만한 물리학자의 이름을 몬 따 이름 지은 여자 주인공은 어떤 인물일까? 그런 궁금증에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일본소설, 특히나 추리소설은 특유의 매력점이 있다. 뭔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의 추악하거나 아주 아름다운 심리 양극단을 오가며 파헤치는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 자신,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책은 다소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사람이 주인공인지 헷갈릴 것 같았지만, 나는 곧 나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아주 매력적인 미도카 라는 여자아이에게 빠져들었다.
미도카는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시골 해안가의 외갓집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몰아친 허리케인 때문에 엄마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아이이다. 그 이후 일 때문에 바쁘기만 했던 아버지를 피해 외갓집에서 길러지다가, 다음 챕터에서는 미도카는 사라지고 어떤 형사 출신 경호관 다케오에게 이야기의 시점은 옮겨간다. 다케오는 전직 형사로, 지금은 경호관 일을 해가며 가족들을 먹여살리려고 하고 있다. 그가 맡은 일은 미도카 라는 어린 20살 남짓 여자아이를 경호하는 것. 너무나 평범한 일에 너무 큰 보수. 모든 것들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묵묵히 다케오는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다케오라는 남자와 미도카 라는 우리의 소설 주인공 라플라스의 마녀는 아무 관련없는 , 같은 도쿄에 사는 어떤 사람들의 연속적인 황화수소 가스 중독사건이 신문기사에 나게 되면서 ‘관계성’ 이라는 것을 가지게 된다. 미도카는 이상한 여자아이라고, 다케오도 , 이 책을 읽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비가 올 것 같은 기운은 하나도 오지 않았는데 미도카는 비가 올 것을 미리 알았고, 천둥과 번개가 정확히 어떤 지점에 내리치는지, 그리고 그것까지는 평범한 기상에 예민한 사람인가? 했지만 예를 들어 길을 걸어가다가 빗길에 차가 옆을 지나가면서 바퀴 때문에 물이 튀는데 그 물이 어느 방향으로 언제 어떻게 튈지 조차도 미도카는 아는 것 같이 보였던 것이다.
신도 아니고, 마치 헐리우드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여자아이가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고, 연구소 직원 같은 사람들이 미도카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시고 다닌다던지, 세상 모든 일에 무심해 보이는 듯한 미도카의 눈빛이라던지, 내가 읽는 책의 주인공 라플라스의 마녀님은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구나. 이 아이는 삶이 많이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그렇게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이 여자아이가 가진 비밀이 무엇인지를 골몰히 생각하며 , 그렇게 한 장 한 장 궁금증을 가지고 넘기게 되었다.
미도카는 아주 평범한 소녀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연구실에 왔다갔다 하다가 유명한 의사이자 뇌공학 학자인 아버지의 실험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된다.아버지가 하던 실험은 어떤 황화수소 가스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남자아이 켄토를 살려내는 일이었고, 켄토를 살려내기 위해 여러 치료를 하던 중 미도카의 아버지 우하라 박사는 자신이 연구하는 뇌공학 시술방법을 시행해볼 좋은 임상실험 대상으로 적합하다는 학자적 욕심을 느끼게 된다.그리고 우하라박사는 죽어가는 켄토에게 임상실험을 성공해, 깨어난 켄토는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천재두뇌를 가진 ,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과 물리적 현상을 예측하여 순식간에 계산해낼 수 있는 , 이른바 라플라스가 말한 물리적 예측이 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켄토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너무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고립감. 그리고 미래의 일이 너무 쉽게 알게 되어버린다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여 버린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 여러 가지가 뒤엉켜 우하라 박사의 연구실에서 도망가 버리고 켄토와 동년배로 친구였던 미도카는, 어떤 사람도 따라잡을 수 없는 예측재능을 가진 켄토를 잡아올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으며, 그러려면 자신도 켄토 처럼 미래를 에측할 수 있게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 이 책의 제목인, 라플라스의 마녀가 탄생하는 것이다.
‘ 과학자들의 욕심이란 참 대단하다. 그리고 인간은 그보다 더 잔인하다. ’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연구에 온 힘을 다해온 덕에 나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각종 기계와 빠른 운송수단에 둘러 쌓여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만, 그 때문에 내가 모르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왔던 것일까? 이런 회의감이 들었다. 연구 성과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딸에게 뇌수술을 감행한 우하라 박사.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살해될 뻔 했다가 겨우 살아나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어와 도망간 켄토 대신 미래를 예측하는 천재가 된 미도카를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이용하고자 감시하는 연구실의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존재가 된 자신을 이용하여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이득이 될 만한 정보를 캐내려하는 어른들. 그 사이에서 견디고 있는 켄토와 미도카 라는 두 어린 아이의 존재는 마치 대비되는 음영처럼, ‘ 어른들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보게 되기도 하였다.
소설 속의 그 누구보다 잔인한 어른, 이 모든 비극의 시작. 켄토의 아버지 ‘아마카스 사이세이’ . 천재로 칭송받는 감독이자 켄토의 아버지. 아내와 자식이 모두 황화수소 중독으로 죽는 비극적 삶 속에서도 예술로 모든 것을 승화시킨 엄청난 존재.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티클 없이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식물인간이 된 아들까지 이용한 인간.나는 그 사이세이의 잔혹함에 내가 읽고 있는 이 내용을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추리하는 사이세이가 가족을 죽인 이유가 내 착각이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랬다.
하지만 역시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그리고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한 존재이다.
읽다보면 평소 꽤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나조차 내 안에도 그런 악의와 이기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참을 수 없이 노골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 어떤 책에서도 느끼지 못한 새로운 깊이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점점 더 끊을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읽어내려가며 ‘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 ’
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나는 미도카처럼 모든 것들을 당연한 듯이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목숨을 건 위험한 수술을 견뎌냈고, 그 이후 내 뇌는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게 되어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대기의 흐름이나 물방울이 튀는 각도조차 눈 앞에 슬로우모션처럼 당연하게 보이고, 인류의 미래 생존 여부 같은 아주 먼 미래의 일까지도 당연히 머릿속에 각인된 천재가 된다면 나는 내 재능을 축복이라 여기고 이득이 될만한 일을 찾아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저주받았다고 여기면서 켄토처럼 세상으로부터 숨어서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응징하러 다니게될까? 아니면 그저 초연하게 나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보통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게 될까?
나는 라플라스의 마녀 미도카의 그 강한 마음. 아버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켄토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 정말로 부럽고 대단하다고 .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사소한 마음을 잃지 않은 체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큼 어쩌면 오만해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버리기가 쉽다. 내가 대단하기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들을 누리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쉽게 무시하기도 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사람을 우리는 많이 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고, 바로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살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아가는 것처럼. 그리고 항상 우리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갈망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와, 미도카. 그리고 이 소설 안의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미래를 알고 살아간다 해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해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다 알 수 있다고 해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두 천재 켄토와 미도카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어떤 일면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특유의 약점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인생을 기념하는 작품치고는 갈등의 고조에서 느껴지던 긴장감이 결론에서 마도카와 켄토의 우정도, 사랑도 아닌 모호한 감정선 안에서 너무 간단히 해결되어 버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켄토 아버지의 집착증적인 성격과 그들에 의해 살해당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도 아무런 설명 없이 없어져버렸다. 훌륭한 소재성에 비해 그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나의 마음에 오래 남을만한 깊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절대 자신을 잃지 않을 것.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잃지 말 것. 똑같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인데도 켄토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그리고 그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까지 죽여 버리는 잔인한 천재가 되어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고, 미도카는 친구 켄토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사용하고, 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미래를 보고 세상 모든 것을 알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라플라스의 마녀 미도카는 그런 능력을 얻었음에도 소중한 친구 켄토를 잃었고, 여전히 어릴 적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엄마를 그리워하고 ,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기대 하나 없는 무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미래의 일을 하나도 모른다 해도, 나는 나의 현재를 사랑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현재의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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