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나 쉽게, 당연한 듯이 말한다. 가난하게 살지 않고,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라고. 하지만 정말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한 부자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반대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삶의 수준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라면, 성공한 부자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았다는 것일까?’라고 말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그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의 묵직함이 만만치 않아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내가 사는 모든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 할아버지는 목공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어느 날 심장병으로 병원 주치의에게 일을 계속하기엔 위험하다는 진단을 듣는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국가복지정책에 따라 질병 수당을 받기 위해 의료 전문가의 진단을 받으려는데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의료 전문가는 전화번호를 누를 수 있는지, 자명종 시계 초침을 맞출 수 있는지 등 심장병과 관련없는 질문만을 앵무새처럼 말하고, 결국 사지가 멀쩡하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만 받게 된다.
이에 자신의 상황을 설득시키려하지만 찾아가는 어떤 복지센터에서도 합당한 대우와 답변을 듣지 못한다. 수당을 신청하고, 신청에 떨어졌다면 판정에 항고하고, 항고는 인터넷에서 신청해야 한다고 안내하기만 하는 그들에게 블레이크씨는 화가 나지만 몸도 불편한 상황에서 한 개인이 국가의 시스템이라 정해졌다는 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점점 이야기는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매뉴얼, 매뉴얼, 시스템, 원칙, 영화는 보면 볼수록 마치 내가 블레이크씨의 가족이 된 것처럼 그것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이 치미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나 역시 늘 시스템과 정해진 매뉴얼이 있어야 체계적이고,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 기계처럼 인터넷과 기술로 편리한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스템과 매뉴얼, 인터넷이 오히려 그들의 진입을 막고, 차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뉴스에 나오고 있는 지하철 장애인 시위와, 음식점 앞에서 키오스크 기계 주문이 어려워 한참을 헤매시던 할머님을 보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결국 사람을 위해 만들어내는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사람을 소외시키고, 오히려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조차 힘든 상황에서 같은 센터를 찾은 생판 남 미혼모 케이티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돕는 블레이크씨의 모습이 기계처럼 응답하고 관망하는 센터 직원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그제서야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I, Diniel Blake‘
관공소 건물 벽에, 저항을 의미하는 그래비티를 남기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그의 말처럼 개가 아니며, 사람이다. 고로 누구나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시스템을 마련해놓고 그 시스템이 정말 사람의 삶을 살피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회를 우리도 함께 생각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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